우리가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이유와 기념하는 방법에 대하여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19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20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21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22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33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주의 뜻이라면) 우리가 다음 주에 다시 로마서로 돌아가기 전에, 주의 만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문맥을 살피면서 주께서 명하신 이 성스런 예식을 왜 기념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념하여야 하는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서 오늘 메시지를 먼저 전하고 나서 주의 만찬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우리의 삶과 교회에 관한 완전무결한 기초가 되는 성경 다음으로, 우리 교회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베들레헴 침례교회 장로 신앙 확언서'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그 문서를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교회 홈페이지나 디자이어링갓 웹사이트에서 그 문서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문서 중 단락 12.4는 주의 만찬에 대하여 우리가 고백하는 교리의 요약입니다.
우리는 주의 만찬이 주님의 명령이라고 믿는다. 신자들이 모여서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신다. 떡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하며, 주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 안의 새 언약을 의미한다. 이처럼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심으로써 주를 기념하여 주의 만찬을 행한다. 그럼으로써 주께서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합당한 방식으로 먹고 마시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데, 이는 물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믿음에 의하여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음을 통하여 획득하신 유익들의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은혜 안에서 성장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주의 만찬에 대한 이러한 이해의 성경적 기초를 여섯 대지로 나누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 역사적 기원, 2) 믿는 자만 성찬에 참여함, 3) 물질적 행동, 4) 정신적 행동, 5) 영적 행동, 6) 신성한 심각성.
1. 주의 만찬의 역사적 기원
마태복음(26:26), 마가복음(14:22), 누가복음(22:14)은 모두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날 밤 그의 제자들과 가지신 마지막 만찬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 복음서의 기록들은 각각 예수님께서 감사하시고 떡과 잔을 축복하시고, 이를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떡은 그의 몸이고 잔은 언약의 피라고 혹은 그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 누가복음 22:19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초대 교회 시대 기록을 보면 교회는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주의 만찬을 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그의 죽음을 기념하여 그 만찬을 재연하였습니다. 바울의 서신은 가장 초기의 증언입니다. 고린도전서 11:20에서 그는 교회 생활에 있어서 "주의 만찬"이라고 불리는 어떤 의식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이는 "주의 만찬"이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필시 주 예수님이 그 예식을 제정하시고 명하셨기 때문이며, 또한 그 중심적 의미가 바로 주님의 죽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23-2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여기서 "주께 받은 것이니..."라는 구절은 필시 의미하기를 주님이 바울(다른 사도들과 달리 최후의 만찬 자리에 있지 않았음)에게 직접 주의 만찬의 시행에 대하여 확인하여 주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따라서 주의 만찬의 역사적 기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만찬입니다. 주의 만찬의 시행이라든가 주의 만찬이 갖는 의미는 마지막 만찬 중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에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주의 만찬의 기원이십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주의 만찬의 촛점이자 그 내용이십니다.
2. 믿는 자들이 참여함
주의 만찬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 즉 교회의 행위입니다. 이는 불신자들의 행위가 아닙니다. 믿지 않는 자들도 그 자리에 참석하여 지켜 볼 수 있습니다. 실로, 불신자들도 그 자리에 참석하여 지켜 보는 것을 저는 환영합니다. 주의 만찬과 관련하여 비밀스럽게 할 것은 전혀 없습니다. 공적으로 시행됩니다. 그리고 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비밀스레 시행되는, 사교적 의식이 아닙니다. 이는 한 자리에 모인 교회에 의해 시행되는 공적인 행위입니다. 사실 고린도전서 11:26에서 바울은 말하길,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라고 합니다. 따라서 주의 만찬에는 전하고 선포하는 그러한 면이 있습니다. 은밀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선포하는 것으로서 주의 만찬은 이를 지켜보는 사람에게 독특한 인상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양원이나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주의 만찬 받는 것을 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종류의 개별적인 기념 행위는 예외적인 것이며, 성경적 표준은 아닙니다. 성경적 표준은 교회의 모임 중에 행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장을 보면, 바울은 다섯 번이나 교회의 모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모였을 때 주의 만찬을 먹는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17절 하반절입니다: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18절: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20절: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33절: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34절: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다시 말하면, 고린도인들은 주의 만찬을 그들의 일반적 저녁 식사와 너무 긴밀하게 연결시킴으로써 주의 만찬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먹을 것이 많았고 다른 이들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말하기를, 식사는 집에서 먹고 교회가 함께 모여서는 주의 만찬을 먹으라고 합니다.
한편, "교회"라는 단어가 18절에 사용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우상에서 돌이켜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그리고 영원한 삶의 소망을 위하여, 그리고 영혼의 만족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위해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한 자들 말입니다. 따라서 주의 만찬에는 예수님을 믿은 신자들이 참여합니다. 신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3. 주의 만찬의 물질적 행동
주의 만찬의 물질적 행동은 풀 코스 만찬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23-25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떡의 종류나 떡을 떼는 방법 등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특정되지 않습니다. 잔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 말해주는 유일한 기록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각각에 있어서 한 절 안에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29, 참조 마가복음 14:25, 누가복음 22:18). 따라서 "포도나무에서 난 것"이라고 지칭됩니다. 단순한 포도 주스를 사용하든지 아니면 포도주를 사용하든지 이는 결코 큰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본문 안에는 둘 중 어느 하나는 명하고 나머지는 금지하는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재미로 하는 대체물에 관해서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베이글이라든가 콜라 등을 사용하는 것 말입니다. 주의 만찬은 놀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심중함을 가지고 이를 기념하여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더 얘기하겠습니다.
이제 넘어가면서 신약에는 주의 만찬의 빈도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나와 있지 않다는 것을 언급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기를 매주 행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은 분기별로 행합니다. 우리는 그 중간 정도 지점에 있으며 일반적으로 매달 첫 주일에 주의 만찬을 기념합니다. 저는 우리가 이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되어 고려할 사항은 이렇습니다. 1) 어느 정도 빈도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사역과 관련하여 그 합당한 중요성에 부합하는가? 2) 어느 정도 빈도로 행하는 것이 우리가 이에 무심해지지 않고 그 중요한 가치를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이러한 고려 사항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각 교회들은 서로 다른 빈도로 주의 만찬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4. 주의 만찬의 정신적 행동
주의 만찬 참석자들의 정신적 행동은 그들의 마음을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 죄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역사적으로 죽으신 것에 대하여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24절과 25절입니다: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주의 만찬은 매번 기독교가 뉴 에이지 영성이 아니라는 것을 거듭거듭 상기시킵니다. 주의 만찬은 여러분의 내적 존재와 접촉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셨습니다. 그는 몸을 가지고 계셨으며 피를 내뿜는 심장을 가지고 계셨으며 피를 흘리는 피부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는 죄인의 자리에서 로마 제국의 십자가 상에서 공적으로 죽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역사상 영 단번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의 정신적 행동은 기초적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상상하는 것이 아닙니다. 꿈꾸는 것이 아닙니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과거에 있었던 일에 의식적으로 마음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에 대하여 성경에서 배운 것에 우리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기울이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은 매번 우리를 역사의 핵심에 뿌리내리게 합니다. 떡과 잔. 몸과 피. 사형집행과 죽음.
5. 주의 만찬의 영적 행동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태까지 제가 기술한 것들은 불신자들도 할 수 있습니다. 마귀도 육신만 있다면, 이를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기억하는 것 말입니다. 이것들에는 그 자체로서 고유한 신령한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주의 만찬이 예수님께서 의미하신 바대로 제대로 행해지려면, 먹고 마시고 기억하는 것 외에 무엇인가가 더 벌어져야 합니다. 즉, 불신자들이나 마귀들은 할 수 없는 무언가 말입니다.
한 번 더 장로 신앙 확언서에서 핵심 문장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내용이 성경 중 어느 부분에서 비롯된 것인지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합당한 방식으로 먹고 마시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데, 이는 물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는 믿음에 의하여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음을 통하여 획득하신 유익들의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은혜 안에서 성장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데...... 영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믿음에 의하여...." 라는 부분은 성경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고린도전서 10:16-18입니다. 제가 그 구절들을 읽을 때, 참여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koinōnia estin tou haimatos tou Christou)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ouchi koinōnia tou sōmatos tou Christou estin)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koinōnia tou thusiastēriou) 자들이 아니냐
여기 기억하는 것보다 더 깊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여기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리스도를 보물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말하길,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문자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그의 몸과 피 안의 코이노니아 혹은 교제 혹은 교통(koinōnia)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의 죽음에 동참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믿음에 의하여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기
이 참여/함께 나눔/동참 등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8절이 그 힌트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18절은 유사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유대 희생 제사 가운데 일어나는 것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일종의 같은 단어임] 자들이 아니냐?" 제단에 참여/함께 나눔/동참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이는 그들이 제단에서 벌어지는 일을 함께 나누고 공유한다는 것 혹은 제단에서 벌어지는 일로부터 유익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죄 용서와 하나님과의 회복된 교제 등을 즐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16절과 17절은 의미하길, 신자들이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 그들은 영적으로 또 다른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 상에서 일어났던 것을 먹고 마시는 —즉 우리 생명 안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믿음에 의하여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위하시는 그 모든 것을 신뢰함으로써— 우리는 예수님이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 상에서 죽으셨을 때 우리를 위하여 획득하신 유익으로 우리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달 주의 만찬 앞에서 여러분의 촛점을 여러 가지 사항들로 이끌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과의 화평, 그리스도 안의 기쁨, 장래의 소망,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역경 속에서의 안전, 갈 바를 알지 못할 때 인도하시고 지도하심, 병으로부터의 치유, 유혹에서의 승리 등등.) 그렇게 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우리를 위하여 제공된 그의 흘린 피와 그의 상한 몸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하길,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린도후서 1:20). 하나님의 모든 선물, 그리고 하나님과의 모든 즐거운 교제 등은 예수님의 피로 획득되었습니다. 바울이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라고 하였을 때, 이는 이런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을 믿음으로 영적으로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사신 모든 영적 축복을 먹는 것이 아니냐?' 불신자는 아무도 이를 행할 수 없습니다. 마귀는 이를 행할 수 없습니다. 이는 주께 속한 가족을 위한 선물입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을 기념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사신 하나님의 모든 약속들을 영적으로 마음껏 먹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6. 주의 만찬의 신성한 심중함
바울이 고린도전서 11장에서 한 것처럼 끝마치고자 합니다. 바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일어난 일의 심각성을 분별하지 못하고 주의 만찬을 우습게 보고, 경하게 여기고, 부주의하게,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면, 여러분이 신자라 하더라도 여러분은 목숨마저 잃을 수 있습니다. 이는 진노 때문이 아닙니다. 아버지로서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27-32을 천천히 읽을 터이니, 이제 우리 모두 주의 만찬의 식탁으로 기쁘게 그리고 심중한 마음으로 나아가도록 합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즉, 그리스도의 소중한 선물을 믿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자신이 충분히 선한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데서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데로 기꺼이 돌이키고자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즉, 이 떡은 단순히 생선 샌드위치처럼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채로, 마치 고린도 교회의 누군가처럼]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30 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다음 구절이 설명하듯, 지옥에 가기 위해서 죽은 것은 아님] 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32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즉,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않음[]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즉, 지옥에 가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주의 만찬을 경히 여기지 마십시오. 이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들 중 하나입니다. 이제 함께 주의 만찬을 먹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