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
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
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
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
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
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974년 봄, 제가 독일에서 신학공부 를 마무리할 때 쯤, 제 지도교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강의를 대신 하기 위하여 오스카 쿨만이라고 하는 위대한 신 약 학자가 바젤 대학에서 뮌헨 대학으로 와서 요한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8주에 걸친 과정 중 무려 13주를 요한복 음의 첫 14개 절에 할애하였습니다. 그처럼 요한복음의 첫 구절들은 매우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특별한 진리에 대한 크리스마스 메시지
따라서 저는 이 본문을 모종의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선택하였으며 이를 단 한 번의 설교로 전하고자 합니다. 원래는 여러 번에 걸쳐서 깊이 다루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하나의 설교로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이 본문을 특별히 선택한 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이 본문은 크리스마스에 전하기에 참으로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14절 내용은 크리스마스에 매우 적합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가 갖는 의미입니다. 처녀의 몸을 통해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어 태어나심으로써, 이 분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인격 안에서 하나님은 신인 으로 이 세상에 들어오셨습니다. 제가 이 본문을 고른 두 번째 이유는 이 본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한 진리로 참으로 충만 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들은 우리가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들입니다.
특히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관점들이 유행 하는 오늘날에 이 진리들을 선포하고 이 진리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지난 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세상의 주요 비기독교 종교들마저 오늘날 그들이 예수님을 존중하고 존경하고 어떤 면에서 믿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최근 들어 이슬람교 지도자들이 마치 자신들이 우리들보다 더 예수님을 존경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셨을 것 입니다. 자신들은 예수님의 치욕적인 십자가 죽음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므로 자신들이 그리스도인들보다 예수님을 더 존경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성경의 그리스도와 다른 종교에서 자기들도 공경한다고 허황되게 주장하는 그리스도 사이의 차이점을 잘 구별하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당시 누구보다 예수님에 대해 가장 친밀하게 잘 알고 있었던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진술한 이 위대한 진 술을 통해 육신이 된 말씀에 관한 다섯 가지 진리를 규정하고 설명하고 이 진리들을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고자 합니다. 그 후, 여 러분이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첨예하게 다른 두 가지의 가능한 반응들을 대조하고자 합니다. 저의 목적은 여러분 이 예수님을 그분의 참된 모습 그대로 보고, 그를 여러분의 주와 여러분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보물로 영접하 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이미 그를 영접하였다면, 더욱 더 그를 영접하고, 그를 보물로 여기고, 그를 기뻐하고, 그를 따르고, 그를 드러내게 되길 기도합니다.
자, 그러면 이 본문 안에서 "육신이 된 말씀"에 대한 다섯 가지 진리에 대해 시작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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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이 된 말씀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17절: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예수"는 "구 주"를 뜻하는 말로서 요셉이 주의 천사에게서 전해들은 이름입니다.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 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 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유대인들이 그 민족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고 세상 정사를 그 어깨 위에 메실 분으로 오랫동안 기다려 온 왕을 일컫는 이름입니다.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난 사실을 베드 로에게 말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요한복음 1:41).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그리고 요한이 덧붙임]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따라서 이 구절들에서 말하고 있는 분은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라 알려진 분입니다. 그리고 각 이름은 엄 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구주이면서 왕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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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이 되신 말씀은 사람으로 지상에 태어나시기 전에 하나님으로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라는 구절과 "이 말 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라는 두 개의 구절들에 담겨져 있는 신비에 저항하는 종파 그룹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항상 있어 왔습니다 . 그들은 단지 인간의 개념에 속박되어서, 이 두 어구가 함께 성립하는 신비를 보지 못하고 이 두 어구가 함께 성립할 수는 없다 고 주장합니다. 그는 하나님이셨거나 하나님과 함께 계셨거나 둘 중 하나만 성립하지 둘 다 성립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면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이시면 하나님과 함께 계시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 두 문장 의 진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그들은 때때로 번역을 바꾸기까지 합니다(여호와의 증인에서 그렇게 하듯이). 이렇게 말입니다. "말씀 이 하나님과 함께 계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의 신(a god)이시니라." 하지만 요한복음이나 성경 다른 부분들에서 볼 때, 기독 교 회가 그러한 가르침을 참되고 정통적인 가르침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에는 마땅한 문법적 이유와 문맥적 이유들이 있습니다.
1절이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분은 육신이 되시기 전에 하나님이셨고, 그의 아버지도 하 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여기, 아버지와 아들 두 위격이 표현되어 있고 동시에 한 하나님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삼위일체로 알고 있는 진리의 일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중 한 위격이신 아들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예배하며 요한복음 20:28에서의 도마처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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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이 되시기 전의 그 분을 요한은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 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왜 그분은 "말씀"이라고 불렸을까요? 만일 말씀이라고 불리지 않는다 면 과연 무엇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적절했을 것인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행동"이라고 불렸다면 어떨까요: "태초에 행동이 있으니라 이 행동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행동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행동과 말씀 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행동은 훨씬 더 모호합니다. 우리 말들도 때때로 그 뜻이 명확하지 않고 모호한 경우가 있는데, 행동은 그 의미가 훨씬 더 불명확하고 모 호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설명할 때 통상 행동을 사용하지 않고 말을 사용합니다. 말은 행동보다 의미를 더 명확 하게 담아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가운데 많은 능력의 행동들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씀에 어떤 우선권을 부여하십니다. 제 생각에 그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명확성과 의사소통을 중요시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로, 요한이 "말씀"대 신 "생각"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요: "태초에 생각이 있으니라 이 생각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생각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지만 생각과 말씀은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말씀은 의사 소통을 형성하기 위하여 생각하는 사람의 외부로 나와 표현되는 것입니다 . 요한 사도가 여기서 말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그리고 역사 안에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나타나시기 위하여 존재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느낌"이라고 불렸으면 어떨까 생각해 보겠습니다. "태초에 느낌이 계시니라 이 느낌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느낌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지만 느낌이라는 말도 어떤 명확한 개념이나 의도나 의미를 전달하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행동처럼 느낌도 모호한 면이 있으며 말에 의하여 추가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말씀"이 라고 부른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는 의사소통 혹은 교통을 위함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영원부터 아 버지와의 의사소통 혹은 교통을 위하여 존재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우리에게 향한 신적인 의사소통 혹은 교통이 되셨 는데, 이는 이차적이지만 우리에게 무한히 중요합니다. 요약하면,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부른 것은 그분이 "자신을 표현하시는 하 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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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닌 모든 것은 이 말씀을 통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 사도가 여기서 이 말씀과 관련하여 몇 가지 사항을 말하고 있는 데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밑줄 그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즉각 적으로 창조주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의 기원이십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가 "만물이 그로 말미 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말하였을 때, 이는 그가 하나님이시고 피조물이 아님 을 의미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10절에 나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 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이는 세상의 죄악된 눈멂의 심각성과, 예수님에 대한 거부 안에 있는 세상의 악의 거대함을 강조하고 있 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우리를 만드신 분으로서 우리에게 오시나, 세상은 여전히 그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지 금까지 육신이 되신 말씀에 대하여 살펴본 것은 무엇입니까? 1) 그는 예수 그리스도, 구주이며 기름부음 받은 왕이십니다. 2) 그 는 하나님,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십니다. 3) 그는 말씀–교통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표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4) 그는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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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이 되신 말씀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 니다
요한복음 1:4입니다.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모든 생명은 이 말씀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이미 본 바와 같이 그는 만물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 촛점은 필시 영적인 생명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들이 직면하고 있는 두 가지 거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으 로 죽어 있고 그러므로 영적으로 눈 먼 자들입니다. 요한 사도는 여기서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 문제들 모두에 대 한 해결책이 되십니다. 그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생명을 가지고 계시며, 이 생명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빛이 됩니다.
요 한복음 5:21은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다시 말하면 , 그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죽은 자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말씀하셔서 나사로를 살리신 것과 같은 일을 우리를 위하여 영 적으로 행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의하여 주어진 그 생명은 빛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두 가지 방식으로 관련 됩니다. 첫째, 그 생명은 우리가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죽은 사람에게 생명이 주어질 때, 그들은 보게 됩니다. 즉, 사람이 태어 날 때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일이 영적으로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길,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 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따라서 먼저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시고 그 후 생명은 빛–영적인 실재를 보는 능력–이 됩니다.
둘째, 예수님 자신이 보여지는 빛이십니다. 우리가 불신자일 때, 우 리는 과연 무엇에 대하여 눈 멀었던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의 진리와 아름다움과 소중함에 대하여, 즉 예수님의 영광에 대하여 눈 멀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라고 말할 때, 그는 필시 육신이 되 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적인 광휘를 보는 능력이신 동시에 그 광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라는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는 요한복음 17:24의 예수님의 기도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 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이 두 번에 걸쳐 주장하신 " 나는 세상의 빛이라"(요한복음 8:12; 9:5) 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육신이 되신 말씀께서는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 됩니다. 그는 볼 수 있는 능력이며 눈이 열린 자들이 보게 되는 광휘이십니다.
요약하면, 육신이 되신 말씀에 관하여 살펴본 다섯 가지 진리는 무엇입니까?
- 그는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주시며 하나 님께서 기름부으신 만유의 왕이십니다.
-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습니다.
- 그는 말씀으로 불리셨습니다: 교통하는 하나님(God-in-communication), 자신을 표현하시는 하나님(God- Expressing-Himself)이십니다.
- 그는 창조주이십니다: 만물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며, 그 자신은 피조 물이 아니십니다.
- 그는 생명과 빛이십니다: 보게 하는 살아 있는 능력이시며 그를 보는 자에게 가장 큰 만족을 주시는 찬란한 영광을 가진 분이십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육신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 모든 계 시에 대하여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가능한 반응들 중 하나: 나는 그를 모르며 그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 중 한 반응에 대하여 10-11절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 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를 모르며 그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만드신 분이시며 우리의 생명이시며 우리의 빛이신 분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가장 두려운 말입니다. 제발 간청하노니, 그렇게 가볍게 말하지 마십시오.
또 다른 반응: 나는 그분을 알며 그분을 영 접합니다.
다른 반응은 12-13절에서 발견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저는 오늘 아침에 도 이런 반응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위대하신 분, 육신이 되신 말씀이신 분을 영접하십시오. 그를 구주로 그리고 왕으로 그리고 하나님으로 그리고 말씀으로 그리고 창조주로 그리고 생명으로 그리고 빛으로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모 든 것이 당신을 위하여 있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어두운 사망의 동굴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찾게 하신 날입니다. 동굴 입구에서 불을 피우고 동굴 안으로 불을 던져 넣는 방법 대신에 그는 동굴 입 구에 서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 상에서 죽었으니 빛을 향해 밖으로 나오너라. 나를 너의 하나님, 너의 대속 물, 너의 보물로 영접한다면, 나의 죽음은 너의 죽음으로 계산되고 나의 의는 너의 의로 계산될 것이며, 너는 영생을 갖게 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