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왕 제도의 죄악된 기원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
이 설교는 두드러진 죄악들의 목적과 그리스 도의 영광이라는 설교 시리즈를 이루는 일곱 개의 메시지 중 여섯 번째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는 "이스라엘 왕 제도의 죄악된 기 원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이라고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입니다. 본 메시지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제도는 죄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께 "우리는 주변 이방 나라들과 같은 제도를 원합니 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의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 왕을 원합니다"라고 말한 것은 두드러진 극악한 죄였습니 다. 그것은 두드러진 죄입니다. 사무엘은 17절에서 이를 큰 사악함이라고 부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이스라엘에 왕 제도 가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자손, 왕 중의 왕으로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전 세계 에 대한 그리스도의 왕위는 하나님께서 사후대책으로 생각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죄가 벌어지자 사후대책으로 마련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처음부터 그의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왜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이 두드러진 죄가 벌어질 것을 내다보셨음에도 이를 허락하시고,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 제도를 그리스도께서 왕의 왕의 영광을 얻는 그의 계획의 일부로 삼으셨다면, 왜 처음부터 왕 제도를 이스라엘에 도입하지 않으셨나요? 왜 모세를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삼지 않으신 것일까요? 그 다음에 여호수아가 왕이 되게 하는 식으로 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왜 처음부터 더 직접적으로 왕 제도를 창설 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반역과 죄가 발생된 이후에 비로소 이스라엘 역사에 왕 제도가 도입되게 하신 것일까요?
아브라함 과 장차 올 왕 제도
아브람의 이야기로 시작하도록 합시다.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람을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 로 선택하셨고 그에게 약속하시길 그의 자손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창세기 12:1-3). 메시야 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계통을 통해 오실 것입니다.
아브람은 창세기 14:18에서 멜기세덱이라 하는 정체를 쉽게 알 수 없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불리우며, "살렘 왕"이라고 불립니다. 그의 이름은 "의의 왕"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멜기세덱을 그리스도의 모형 혹은 예시(미리 보여주는 것)로 보고 있습 니다. 왜냐하면, 시편 110:4에서 말씀하길, 장차 오실 메시야적 왕은 또한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실 것이라 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히브리서 7:1-3)
한나와 장차 세워질 왕 제도
따라서 이미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장차 오실 메시야는 제 사장인 동시에 왕이실 것입니다. 그가 왕이 되시기로 하는 결정은 나중에 내려진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의 탄생과 헌정 이야기에서 도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엘리는 그녀가 아이를 가질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사무엘은 태어났고 한나는 그를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그를 주께 바칩니다. 한나는 놀라운 것들을 말하는데, 그 중 사무엘상 2:10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한나가 말하는 시점은 이스라엘에 왕이 생기기 수십 년 전입니다. 사무엘이 나이 많아 늙었을 때 백성들이 왕을 세워 달라고 조른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모세와 장차 세워질 왕 제도
신명기 17:14-20로 되돌아 가보면, 여기서 모세는 마치 왕이 세워진 것처럼 왕 제 도에 대하여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28:36은 여호와께 반역하면 백성들과 그들의 왕이 먼 나라로 유배될 것을 예언 합니다. 따라서 사무엘상 12장에서 일어난 일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깜짝 놀랄 일이 아니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드러진 죄(왕을 구하는 것)가 일어날 것을 아셨고, 그 제도를 허락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허락하시 려고 의도하실 때, 그는 매우 지혜롭게 하시지 어리석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극적인 죄는 하나님의 대단히 중요한 계획(그의 아들의 영광을 위하시는 계획)의 일부입니다.
어떻게 왕 제도가 도입되었나
왜 하나님께서 일을 그 런 식으로 되게 하셨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기 전에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는지 봅시다. 왕에 대한 요구는 사무엘상 8장에 시작됩니다 . 하지만 여기 12장에서 발췌해 보겠습니다. 8절: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곳에 살게 하셨으나." 9절: "그들이 그들의 하나 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사령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넘기셨더니 그들이 저 희를 치매." 10절: "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그러 하오나 이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11절: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 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너희 사방 원수의 손에서 건져내사 너희에게 안전하게 살게 하셨거늘."
백성들이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부함
8-11절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왕으로서 신실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부르 짖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안전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왕이 있는 목적입니다—백성에게 평 화를 주는 것. 그런데 그 백성들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12절: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사무엘]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 도다."
여러분은 사무엘의 음성에서 불신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우리 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사무엘은 이런 백성들의 요구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까요? 사무엘상 8:7-9에 의 하면, 여호와께서는 이미 사무엘에게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 그러므로 그들의 말을 듣되 너는 그들에게 엄히 경고하고 그들을 다스릴 왕의 제도를 가르치라."
두드러진 죄악: "죄악이 큼"
따라서 사무엘상 12:13에서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너희가 구한 왕, 너희가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그리고 나서, 그는 우레와 비로 백성들에게 징조를 주시기를 여호와께 구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크다고 선포합니다. 17절: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 전에서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에게 밝히 알게 하시리라."
이제 백성들의 사악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3:20-22에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첫 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음을 명백하게 진술합니다. "그 후 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이 경우 뿐만이 아닙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역사상 두드러진 죄들 속에서 이런 일들을 반복하여 보고 있 습니다. 사람은 악을 꾀하나, 하나님은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이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는 이 두드러진 죄가 행해질 것을 미리 보셨습니다. 그리고, 왕 제도를 허락하실 것과 왕 제도가 행해질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왕 제도를 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시는 계획의 일부로 만드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제기됩니 다. 왜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에 왕 제도를 도입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모세가 초대 왕이 되게 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그 다 음에 여호수아가 왕이 되게 하는 식으로 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왜 처음부터 더 직접적으로 왕 제도를 창설하시지 않으시고, 인간의 반역과 죄에 의하여 이스라엘 역사에 왕 제도가 도입되게 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이스라엘의 반역을 통하여 비로소 왕 제도가 도입 되게 하신 이 모든 역사적 과정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적어도 여섯 가지를 배워야 함
1)우 리는 목이 곧고, 반역적이고, 감사하지 않는 자들이다.
우리는 이로부터 우리가 얼마나 목이 곧고 반역적이고 감사하지 않는 자들인지 배워야 합니다. 사무엘상 12장이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고 그들을 주변의 악한 왕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신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시작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매번 하나님 을 잊어버리고 다른 것들을 추구합니다. 이는 단지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 인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나의 삶의 이야 기이기도 하며 여러분의 삶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애정에 있어서 항 상 동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날에는 감사하다가도 어떤 날에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날들에도 마땅히 감사해 야 할 만큼 감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과 그의 수많은 선물들에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경탄과 감사로 반 응하려면, 여러분은 얼마나 감사가 많아야 하고 얼마나 기쁨이 많아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처럼 우리의 그릇된 모습을 알려 주 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마치 우리 모습의 사진같은 것을 주신 것입니다. 그의 백성들이 이같이 감사하지 않고 우상숭배적인 방향으로 흘러떠내려가게 허락하신 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하심입니다(로마서 3:19).
2.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에 신실하시다.
우리는 이로부터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에 얼마나 신실하신지 배워야 합니다. 22절: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가장 깊은 기초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의 이름에 대한 충성입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한 질투와 열심입 니다. 다음 구절을 천천히 그리고 철저하게 읽어 보십시오: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 실 것이요." 여기 "그들의 큰 이름을 위하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이름의 가치와 진리와 의를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되어 계십니다. 이같은 이야기들이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는 하나님의 길은 하나님의 이름의 무한한 가치에 의하여 가이드되는 무한한 지혜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에 지극히 성실하심으로 인해 은혜가 죄인에게 흘러간다.
우리는 이 로부터 우리같은 죄인들을 위한 은혜가 하나님의 자기 자신의 이름에 대한 지극한 성실하심에서 흘러나옴을 알 수 있습니다. 19- 22절에 기록된 놀라운 기술을 읽어 보십시오. 19절에서 백성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범한 엄청난 죄로 인해 두려워합니다. 그들이 말하길, "당신의 종들을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이에 대한 사무엘의 대답은 죄인에게 향한 값없는 복음의 은혜의 그림과 같습니다. 사무엘이 말하길(20절), "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이 부분에서 멈추어 경탄하십시오. "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아니, 인쇄에 실수가 있는 것 아닌가요? "두려워하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아 닌가요? 그러나 말씀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라고 합니다. 이는 순전한 은혜입니다. 하나 님의 은혜는 우리가 받아 마땅한 방법대로 우리를 대하지 않으십니다. 즉, "두려워하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라 고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보다 더 낫게 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이 은혜의 기초에는 무엇이 있나요?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악을 행하였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는 이미 그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22절: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에 성실하신 것이 여러분에 대한 그의 신실하심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 대한 그의 지대한 충실하심을 저버리시면, 우리를 위한 은혜는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그의 친절하심을 우리 의 가치 위에 기초하게 하셨다면, 우리를 향한 친절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목이 곧은 자요, 반역적인 자요, 감사하지 않는 배 은망덕한 자들입니다. 달라지기 위해서는 오직 값없는, 공로 없는 은혜가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러한 은혜의 기초는 우리 이름의 가 치가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의 무한한 가치입니다. 디모데후서 2:13을 상기하십시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 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이 두드러진 죄악에서 우리 구원의 은혜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가치에 기초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자신을 소중히 여기시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하신 것입니다.
4) 왕권은 오 직 하나님께만 속한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왕 제도를 도입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부터 왕권은 오직 하나님께 만 속하여 있다는 것을 배워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셔야 함을 극히 명확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인간 왕을 두시지 않고 친히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리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왕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였을 때, 그들은 이 진리를 거부하고 배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상 8:7에서 이를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이 모세와 여호수아 등이 왕이 되게 하여 왕 제도를 세우셨다면,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수 있다는 것은 좀 불분명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경쟁자들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5) 신인(God-Man)께서 왕이 되셔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 왕을 세우신 것으로 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단지 인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기도 한 신인이신 왕께서 오시기까지 전부 실패로 점철될 인간 왕의 라인을 설립하시려는 것이었음을 배워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수 있으니까요. 이스라엘에게 인간 왕을 주 실 때,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이 되실 수 있다는 생각을 바꾸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왕 이십니다. 그리고 다른 왕들처럼 실패하지 않을 왕, 다윗의 자손께서 오실 것입니다. 그는 또 하나의 죄악된 인간 왕이 아니십니다 . 그는 신인이십니다.
바리새인들을 잠잠케 했던 예수님의 마지막 질문은 시편 110:1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말 하길,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예수님은 이 구절을 인용하시면서 그의 대적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다시 말하면, 들을 귀가 있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단지 다윗의 자손 이상이십니다. 그는 인간 왕에 불과한 자들 이상입니 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 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 14). 오직 하 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최종적인 정당한 왕이 되실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러하였고, 마지막에도 그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신인이신 왕이십니다.
6) 그의 백성을 위하여 죽는 왕
마지막으로, 하나님 께서 이스라엘에 인간 왕을 주신 방법으로부터 인간 왕이 있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이 되실 수 있는데, 왜 인간 왕이 필요했을까요? 하나님의 통치의 대상이 되고 그의 사랑을 받을 백성—그들의 죄 때문에 지옥에 있지 않은 —이 있으려면, 왕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습니다. 인간은 죽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당한 왕이 그의 백성들 대신에 죽어야만 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왕은 신인이심으로써 하나님이 왕이 되시면서 동시에 왕이 죽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이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과연 이 모든 악을 행하였으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지 말고 오직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사무엘상 12:20)라고 하였을 때, 이 은혜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의 가치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2절).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지지하시고 변호하시는 것이 은혜의 기초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호가 가장 결정적이고도 최종적으로 나타난 곳은 어디입니까 ?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 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십자가에서, 그의 이 름을 위하여
백성들이 왕을 구하는 죄를 범하였기에 멸망당해 마땅한 바로 그 날에,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죄를 간과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바닥 깔개 아래 덮어버리면서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 님으로 그 이름을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죄는 처리되어야만 합니다. 죄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죽으실 때, 실제 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우리 같은 부패한 사람들이 죄 때문에 멸망하는 대신에 예수님 같이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능력 있으시고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지혜로운 왕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이 그 왕이 그의 백성들을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 활하실 것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기 바로 전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질문을 받은 것은 모든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에 대해 대답하시길,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7:11, 마가복음 15:2, 누가복음 13:3, 요한복음 18:33).
모든 사람의 왕이 오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왕입니다. 특히 그는 그를 믿는 자의 왕이십니다. 그는 오늘 아버지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그의 모 든 원수가 그의 발판이 되고 모든 택한 자들이 이 땅의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모일 때까지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 후 마지막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그리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요한계시록 19:16).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