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
로마서 3:21-4:8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의의 입증
지난 주에 저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인의 구원에 관한 가장 깊은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즉 정죄받아 마땅한 수많은 죄들을 간과하고 넘어가면 하나님이 불의하게 되시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는 하나님께서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며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는 분이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출애굽기 34:6-7)
그리고 지난 주에 제가 전하길, 우리가 죄에 대하여 그리고 의에 대하여 참으로 하나님 중심적인 태도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죄는 (로마서 3:23) 일차적으로 사람에 대해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 범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를 짓는 것은 언제나 이 세상에 있는 무언가를 하나님보다 더 높이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경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궁극적으로 의로운 것을 행하기로 하는 하나님의 헌신입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와 하나님의 영광의 가치를 유지하기로 하는 하나님의 헌신입니다. 의로움은 죄의 반대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하나님을 멸시하지만, 의는 하나님을 위하여 선택함으로써 하나님의 가치를 드높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를 그냥 넘겨버리시고 죄인이 벌받지 않도록 내버려 두신다면, 하나님은 의롭지 않아 보입니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나의 가치를 경멸하는 것은 심각한 것이 아니다; 나의 영광을 경시하는 것은 심각한 것이 아니다; 나의 이름을 모독해도 상관없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의롭지 않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주셨고, 그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의로우심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에 대해 부여하시는 가치의 선포이며,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갖고 계신 미움에 대한 선포이며, 죄인에 대하여 하나님이 갖고 계신 사랑에 대한 선포입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심
이처럼 죄를 간과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또다른 단어는 "칭의"라는 단어입니다. "칭의"란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4:5). 제가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오래 전에 저지른 죄를 간과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죄를 간과하시되 우리들이 어제 지은 죄, 오늘 아침에 지은 죄, 그리고 내일 지을 죄까지 간과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26절은 말씀하기를,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곧 이 때에 [그리스도의 죽으심]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고, 믿는자들은 의롭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가 칭의를 받는 수단이 되는 주관적 믿음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칭의 안에 있는 하나님의 객관적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에 하나님이 하시는 것 즉 하나님의 이 위대한 일에 초점을 맞추면, 의롭다 하심을 받는 믿음이 우리 마음 속에 부풀어 오르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예수님을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 하심의 선물을 받는 자들에게 이 칭의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네 가지 사항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든 우리의 죄를 용서받음
첫째, 의롭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
로마서 4:5-8을 보십시다. 여기서 바울은 구약을 인용하여 칭의의 진리를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칭의의 핵심이 여기 제시되어 있습니다. 7-8절에 제시된 세 개의 위대한 어구들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바울은 죄의 용서가 우리가 믿기 전에 지은 죄들에 국한된 것이라고 한정하지 않습니다. 이를 주목하십시오. 우리의 과거의 죄는 용서받은 것이나 우리의 미래는 하기 나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용서에 있어서 그와 같은 제한은 전혀 없습니다. 칭의의 축복은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지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절대적이고 아무런 자격과 관련 없이 진술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죄책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떻게 그렇게 하시나요? 로마서 3:24은 말씀하기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합니다. "속량"이라는 단어는 어떤 속박 혹은 감금에서 자유롭게 해주는 것 혹은 풀어주는 것 혹은 해방하여 주는 것 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초점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우리 죄의 속박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정죄 아래 가져다 놓는 죄책의 속박을 깨뜨리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3:13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2:2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6)
따라서 칭의—죄의 용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죄책을 담당하시고, 우리를 정죄에서 풀어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오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벌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벌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고난받으심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단번에 고난받으셨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마치 예수님의 첫 제사가 불충분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성만찬이나 미사에서 거듭해서 희생제사로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9:26은 말씀하기를,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브리서 7:27 참조). 그리고 다시 9:12에서는 말씀하기를,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이러한 사실은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의 영광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영 단번에 죽으심과 여러분의 죄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죄의 총체간의 관련성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모든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치워버린 것은 몇몇 죄들만이 아닙니다. 어떤 종류에 한정된 죄들만이 아닙니다. 과거에 한정된 죄들만이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모든 죄들을, 모든 죄를 치워버리신 것입니다.
따라서 칭의의 용서는 우리의 과거의,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모든 죄들의 용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2. 외부의 의를 통해 의롭게 여겨짐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우리에게 전가되는 혹은 우리 것으로 회계되는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의로 여겨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단지 죄를 용서받고서도 하나님 앞에 어떠한 의로운 지위를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멀리 치우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시고 그 앞에 우리가 의로운 지위를 갖고 서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
21-22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20절에서 말하길,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합니다. 당신은 결코 율법주의적 노력에 기초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칭의는 어떻게 얻어지는지 보여주기 위하여) 말합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2)
따라서 아무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 이것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의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말한 바 그 의미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바로 우리의 의로 계산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하여 죽으셨을 때, 예수님은 죄인들에 대한 선물로서의 의를 획득하사 백성들에게 전가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지난 주에 25절과 26절에서 살펴본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들을 간과하심에도 의로우시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유일한 길은 우리를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는 이제 정죄가 아니고 믿는 모든 자에게 주는 생명의 선물입니다.
고린도후서 5:21
고린도후서 5:21은 전가된 의에 대한 가장 숨막히는 구절들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그리스도]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는 죄를 몰랐습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는 결코 죄를 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그의 모든 삶을 통하여 그리고 그의 죽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완벽하게 사셨습니다. 이에 반하여, 우리는 모든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경시하였습니다. 우리는 의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상의 기초가 서기도 전에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게 하셨습니다. 엄청난 교환이 있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죄인이 아니라 죄—우리의 죄, 우리의 죄책, 우리의 형벌, 우리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 우리의 불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놀랍게 입증하신 하나님의 의를 취하시고, 그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입게 하시고 소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입고 소유하신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입고 소유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그리스도께서 도덕적으로 죄인이 되셨다거나 우리가 도덕적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외부에 있는 죄를 담당하시고 그로 인해 고난받으셨으며, 우리는 마찬가지로 우리 외부에 있는 의를 입고 그에 의하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칭의는 성화에 선행한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외부에 있는 칭의의 사실이 갖는 객관적 실제를 확실히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아직 성화의 현실이 아닙니다. 즉,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가는 길에 있어서 도덕적으로 의롭게 되어가는 실제의 과정인 성화의 현실이 아닙니다. 성화도 선물입니다(three weeks). 하지만 성화는 이것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이렇게 부분적으로 의롭게 되는 데 있어서 참된 복음적인 진보를 나타내려면, 우리는 완전히 의롭게 여겨진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해 본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생활 가운데 실제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죄는 용서받은 죄입니다. 칭의의 위대한 선물은 성화의 과정에 선행하며 성화의 과정을 가능하게 합니다.
3. 하나님에 의해 사랑받고 은혜로 대해 주심을 받는 것임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사랑받고 은혜로 대해 주심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정도를 증명하신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그의 아들의 죽음에 의해 풀어야 할 문제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죄를 간과하시고 의롭게 보시게 한 것은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은 간단하게 우리 모두를 정죄하여 멸망하게 함으로써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을 것입니다. 이 또한 그의 의를 입증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로마서 5:6-8에 가장 아름답게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그의 아들의 죽음 안에서 무엇을 입증하고 계신가요? 단지 그의 의로움만이 아닙니다. 그의 사랑의 정도까지 입증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
로마서 3:24에서 바울은 말씀하길,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합니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은혜의 선물 —우리의 행위 혹은 우리의 가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한 친절에서 나오는 선물— 안에서 흘러넘칩니다.
죄의 용서과 하나님의 의는 값없는 선물입니다. 즉, 이는 그리스도에게서 모든 값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값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행위로써 얻어낼 수 없으며 부모에게서 상속받을 수도 없으며, 성례를 통해 얻을 수도 없습니다. 이는 값없는 것이며,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로마서 5:17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죄의 용서와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은혜의 값없는 선물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여겨지고, 하나님에 의하여 사랑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4. 하나님에 의하여 영원히 안전하게 됨
마지막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하나님에 의하여 영원히 안전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30에서 이를 선포합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러분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면, 여러분은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가올 내세의 영광에 도달할 것이며 영원히 거룩과 기쁨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살 것입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확실할까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의 효과는 객관적이고 실제적이고 명확하고 좌절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이 획득하는 것은 영원히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효과는 변덕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구원했다 안 했다 구원했다 안 했다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3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포인트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즉, 그가 우리를 영화되게 하지 않으시랴? 그렇습니다! 우리의 칭의를 안전하게 확보하는 희생제사는 우리의 영화도 안전하게 확보합니다.
여러분이 오늘 아침에 칭의를 얻은 채로 서 있다면, 여러분은 고발이나 정죄를 이미 넘어서 있습니다. 33절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의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셨다면, 아무도—하늘에 있는 누구도, 땅 위에 있는 누구도, 땅 아래 있는 누구도ㅡ 여러분을 죄인으로 고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영화될 것입니다.
왜 그런가요? 여러분이 죄가 없기 때문인가요?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피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