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이라는 고뇌하게 하는 문제
구원의 확신은 많은 이에게 있어 고뇌하게 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고뇌하게 만드는 포인트는 기독교의 객관적인 사실들의 진실 여부가 아닙니다(하나님이 존재하시는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지, 그리스도가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는지, 그리스도가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셨는지, 그리스도가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하시는지 등). 이 객관적 사실들은 우리의 신앙에서 전적으로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구원의 확신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를 가장 고뇌하게 하는 문제는 내가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았는가 그렇지 않은가입니다.
이는 내가 구원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로 압축됩니다. 이 문제가 우리를 고뇌하게 만드는 이유는 - 역사 속에서 많은 이들이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이 자신이 구원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7:21-23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따라서 몇몇 사람들에게 고뇌하게 하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나는 진정 구원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나의 믿음은 진짜인가? 나는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구원하는 믿음에 대한 잘못된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이는 문제를 더 악화시킵니다(그들이 선의로 그럴 수 있습니다). 즉, 구원하는 믿음이란 어떤 진리들을 사실로 받아들이려는 결정에 불과한 것이라고 함으로써 구원하는 믿음에 대하여 변질된 정의를 내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믿음이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일단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삶의 변화를 통하여 믿음의 참됨이 드러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구원의 확신을 얻으려 합니다. 즉, 그들은 야고보서 2:17의 말씀,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라는 말씀이 다른 뜻을 갖는 것으로 만드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구원의 확신을 갖는 데에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는 일부 말씀을 부정하는 것이며, 나아가 고뇌하는 영혼들은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최소한의 믿음에 대해서조차 고민하게 될 것이며, 계속해서 의심하게 됩니다. 이 같은 방법은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결국 진리를 잃게 합니다. 또한 가장 최악의 경우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때로는 구원의 확신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기적적이고, 심오하고, 변화를 일으키는 믿음의 속성을 축소시키는 대신에, 믿음의 참됨을 보여주는 변화된 삶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 대신에, 다른 방법으로 구원의 확신의 문제와 싸워야 합니다. 나의 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 안에서 안식할 수 있는 객관적인 보증이 있다는 것과 또한 나의 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주관적인 보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객관적인 보증은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신" (히브리서 10:14) 십자가 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입니다. 주관적인 보증은 "성화되는 것" 안에서 외부로 드러나는 믿음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구원하는 믿음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로, 믿음은 복음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광 (또는 아름다움)을 보는 영적인 시각입니다. 즉, 하나님이 십자가 안에서 죄인들을 위해 하신 일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듣거나 읽게 될 때, 이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그 자체적으로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나타납니다. 심지어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확신하기 이전에도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에게는 이런 일이 있습니다. 저는 이 아이디어를 고린도후서 4:4 말씀에서 얻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씀하기를,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참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영광스럽고 아름다우시다는 것을 보는 빛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이를 비추어 주시는 초자연적 "빛"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께서 사역하심으로 인해 일어납니다.
두 번째로, 믿음은 이 영광의 복음 안에서의 보장되어 있는 안식입니다. 이를 "보장된 안식" 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보장되지 않은 안식" 을 가진 사람들 - 구원받지 않았음에도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 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강렬한 영광을 지닌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기 위해 그리스도께로 온 적이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는 것은 영원한 벌에서 구출받기 위함일 뿐이며 그리스도를 그 무엇보다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런 분으로 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을 보는" 자들에게 그들의 안식이 보장됩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복음의 빛을 비추시는 곳인 십자가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을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밝혀"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1:18). 셋째,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선물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풍성히 임하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리스도를 보고 그 안에서 안식하는,
존 파이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