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죽는 것
우리의 존재의 주된 목적은 예수님의 영광을 반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몸과 뜻과 마음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생명을 드러내고 예수님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드러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 목적은 죽는 순간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죽음의 목적이고 죽음 이후의 삶의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영생은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이나 심판에 의하여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이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에 의하여 우리의 심판은 이미 지나갔으며 우리의 죽음도 지나갔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닙니다. 즉, 죽음을 죽음으로 만드는 본질이 이미 변했습니다.
무엇이 변화되었습니까?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전서 15:56).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3:15).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죄로 인한 율법의 저주를 스스로 취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갈라디아서 3:13).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요구는 제공되었으며, 율법의 저주는 제거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망이 쏘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죽음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닙니다. 죽음은 이제 생명에서 더 나은 생명으로, 믿음에서 보는 것으로, 신음에서 영광으로, 예수님과의 좋은 교제에서 예수님과의 더 나은 교제로, 고통과 즐거움이 혼재된 상태에서 오직 즐거움만으로, 죄와의 투쟁에서 예수님께 대한 완벽한 사랑으로 가는 순간적 과정입니다.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는 것 안에서 예수님께서 위대하게 보이게 하는 방법은 우리가 죽으면서 이것들을 보물로 여기는 여기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이 세상에 남기는 것들보다 이것들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죽음에 대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거룩한 목적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죽음 없는 죽음의 목적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타락한 세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지막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입니다. 우리는 죽어가면서 마지막 우리의 찬양을 그리스도께 드린 후에 끝없는 찬양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바울은 죽음을 유익으로 여김으로써 우리가 이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겨서 우리가 죽는 것도 유익으로 여길 때, 우리가 죽는 것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위대하다 함을 받으십니다.
죽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성도들의 죽음 안에서 이 목적을 지정하십니다. 베드로의 죽음의 예를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죽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한복음 21:18). 요한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우리를 위해서 해석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요한복음 21:19). 우리 모두에게는 정해진 죽음의 시간과 방식이 있습니다. 이러한 죽음 안에서 우리는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지고의 가치를 찬양하고 드러냅니다. 또한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빌립보서 3:8) 천국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음미하는 것을 유익으로 여김으로써 우리는 이 사명을 수행하게 됩니다.
세상에 남아있는 자들은 죽고 떠나간 자들의 빈 자리를 크케 느낍니다. 눈물도 흘립니다. 이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는 즐거워하였던 선물의 소중함을 증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심지어 여기서도 이 모든 눈물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길이 있습니다. 욥은 그 방법에 대해 말해 줍니다. 그의 10명의 아이들이 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기 1:20-21). 그는 울었으며 그는 예배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더욱 더 현실로 다가오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고한 소중함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살고 죽을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도록 합시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빌립보서 3:8). 이 말씀처럼 예수님을 가장 소중한 보물로 삼는 것, 이것은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전쟁입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위해서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아침에 주의 변함 없는 인자로 저희를 만족하게 하여 주사 저희가 당신의 위대함을 드러니면서 살고 죽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존 파이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