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위한 크리스마스
Advent | Day 19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14–15)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는 사람 이상의 사람의 죽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음으로 가는 행렬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신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얼싸안으셨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오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입니다(마가복음 10:45).
사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지 않게 만들려고 시도했었습니다! 십자가는 사탄의 파멸을 의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을 어떻게 멸하셨던가요?
“죽음의 세력”은 죽음을 두렵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죽음의 세력”은 사람을 죽음의 두려움에 묶는 능력입니다. 죄 가운데 거하도록 함으로써 죽음이 무시무시한 일이 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사탄을 멸하셨습니다. 사탄을 무력하게 하셨습니다. 사탄의 참소에 끄떡 없는 의의 흉패를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제거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한 분이 사탄을 몰아내셨습니다. 사탄의 반역을 진압하셨습니다. 사탄의 전우주적 반역은 진압되었습니다. “마귀의 분노를 우리는 견딜 수 있네. 보라, 그의 멸망이 가까웠도다” 십자가는 사탄을 찔렀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머지 않아 마지막 호흡을 내뱉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자유를 위한 것입니다.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말입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우리들의 인간성을 입으셨고, 예루살렘에서 우리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두려움 없이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 없이요. 나의 기쁨을 위협하는 가장 큰 대적이 사라진다면 왜 작은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죽음이 두렵지는 않지만 직업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죽음(죽음—맥박이 없고, 차갑고, 끝나버린!)—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면, 우리는 자유롭고, 진정 자유롭습니다. 그리스도와 사랑을 위해 해 아래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롭습니다. 더 이상 걱정 근심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아들께서 여러분을 자유케 하시면 여러분은 진실로 자유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