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책이 아닌, 단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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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er & Teacher, Desiring God

저는 종종 책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락—가끔은 문장—이 변화시킨다고 말했습니다.

책을 통해서 단락을 읽게 되고, 종종 책 전체의 문맥에 따라 단락이 특정한 힘을 얻게 되기 때문에, 위와 같이 말하는 것은 어쩌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요점은 이것입니다: 다른 모든 부분은 잊어버려도 한 문장 또는 한 단락이 마음 속에 강력하게 각인되고 그 영향은 매우 클 수도 있습니다.

제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 두 권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책들의 핵심 단락들과 교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외의 나머지 내용들은 아주 오랫동안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제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지금껏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도.)

1. 하나님의 천지창조 목적

성경 이외에 이 책은 어쩌면 제가 읽은 책들 중에서 제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일 것입니다. 그 책은 신학교 학생 시절 성경의 통일성이라는 강좌의 강의 계획서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책을 접한 이후 그 책의 영향력은 제게 있어 뗄래야 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를 만족시킨 거대한 진리 두 개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입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의 궁극적 목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모든 것은 짧은 한 구절의 어구, "하나님의 영광"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예일대 출판부,제8권, 526쪽)

이 책을 통해 성경 말씀은 마치 산사태와 같이 전해지고 있었으며, 이 책은 제 삶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확신들 중의 하나에 대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저의 삶은 필연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알고, 높이며, 사랑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은 전시되며 또한 인식된다. 하나님의 충만은 수용되기도 하며 되돌려지기도 한다. 여기에 발산환원이 모두 존재한다. 그 광채는 피조물에게 비추어지고, 그 빛의 근원으로 다시 반사된다. 영광의 빛 줄기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고, 이 빛 줄기들은 하나님에 관한 것이며, 다시 그 근원되는 분께로 되돌려진다. 따라서 그 전부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고, 하나님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일의 시작과 중간과 끝이 되신다. (예일대 출판부, 제8권, 531 쪽)

이 단락은 제게 그저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그려놓은 것 같이 저를 압도하였습니다. 로마서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을 분명하게 드러낸 메아리같은 마지막 구절은 충격에 휩싸인 저를 더욱 고무시켰습니다.

그러나 삶에 영향을 미친 주된 충격은 바로 다음의 문장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알고, 높이며, 사랑하고, 그 안에서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은 전시되며 또한 인식된다." 더 구체적으로 특정하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의 영광은 전시된다." 제가 하나님 안에서 행복할 때 하나님의 영광은 전시됩니다. 또는 에드워즈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 피조물의 행복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에 있다. 이에 의해 또한 하나님은 높임을 받으신다." (예일대 출판부, 제 8권, 442쪽.)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극히 기뻐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그의 영광을 도둑질하는 것이라면, 이제 모든 것은 달라집니다.

이는 제 삶에 있어 줄기차게 전하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 안에서 가장 만족할 때 우리 안에서 가장 영광받으신다.

2. 의지의 자유

이 책은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운 책입니다. 그 논증의 광범위함과 엄격함 때문에 이는 제가 읽은 책들 중에 가장 많은 생각과 노력을 요구하는 책들 중 하나입니다. 데이비드 웰즈는 이 책을 분수령 같은 책이라고 부릅니다. 당신이 이 책의 주장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삶의 모든 물들이 어디로 흘러갈지 결정될 것입니다. 제게 있어서는 이 책은 저항할 수 없게 구구절절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그 책에서 잊을 수 없는 요약 문장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인간을 도덕적 행위자로 대하시는 것, 인간을 하나님의 명령과 조언과 부름과 경고와 훈계와 약속과 위협과 보상과 형벌의 대상으로 삼으시는 것은, 그것이 적극적 개입이든 허용이든 섭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전 우주에 걸친 모든 종류의 모든 사건들을 뜻대로 결정하시는 것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예일대 출판부, 제1권 431 쪽)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모든 사건들을 그의 대권 하에서 통치하십니다, 이에는 저의 의지의 행동들도 포함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방법 속에서도 제게는 여전히 보상과 벌에 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나의 책임은 양립합니다. 이 사실이 갖는 의미는 매우 방대합니다.

이 부분을 연구하면서 제게 가장 중요한 통찰 중의 하나는 자연적 무능력과 도덕적 무능력에 대한 에드워즈의 대조였습니다. 중요한 단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의지를 발동하더라도 우리가 이를 할 수 없을 때, 이는 자연적으로 무능력하다고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통상 자연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은 의지 외부에 있는 것 즉 우리의 이해력을 담당하는 기관이라든가 몸의 일부 구성요소라든가 기타 어떠한 외적인 것 안에 결함 혹은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무능력은 이 중 그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다. 도덕적 무능력은 오히려, 마음이 거룩한 방향으로 이끌리는 데 있어서의 결핍, 혹은 거룩한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강하게 이끌리는 강력한 이끌림, 의지의 행위를 유발하거나 일으키기 위한 충분한 동기들의 결핍,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맹백한 동기들의 강력함 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예일대 출판부, 제1권 , 159쪽)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데에 있어 자연적인 무능력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없을 것이지만(마치 의자에서 참으로 벗어나려고 의지를 발동하지만 이에 체인으로 감겨 있는 경우처럼), 만약 우리가 무언가를 함에 있어 도덕적으로 무능력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싫어하기에 지킬 수 없는 것처럼). 이러한 통찰은 로마서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과 고린도전서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알 수도 없나니")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했습니다

제 삶을 돌아보며 그 속에서 지금껏 제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보고 맛볼 수 있었던 것을 돌아볼 때, 저는 제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문장들과 단락들, 그리고 그 글을 쓴 하나님께 푹 빠졌던 저자들을 허락하심에 감사하게 됩니다. 특히 이 경우, 저는 조나단 에드워즈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